ーーー


 어느 날 방과후, 와타나베 요우는 복도를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어째서 학교가 끝났는데 다이빙 연습도 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귤색 소꿉친구가 자기 보충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요우의 팔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기에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소같으면 다이빙 연습을 한답시고 재빨리 돌아갈 수 있었을 테지만 하필 오늘 연습은 off.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런 기분을 안은 채, 요우는 그 귤쟁이가 올 때까지 무얼 하며 기다릴까 생각했다. 지금 숙제라도 해 버릴까 싶어 가방을 두고 온 교실로 발을 돌린다.

 그때 어째선가 벛꽃빛이 뇌리를 스쳤지만, 모르는 체 한 것이다.





 교실의 미닫이문을 열자 당연하게도 교실은 사람 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예외라는 것이 있는지 요우가 자기 책상에 발걸음을 재촉하자 그 위에 놓인 가방에 가려지듯 자그마한 벛꽃빛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응?”


 자신도 모르게 멈추어 선다. 그래, 자기 책상 위에 남이 있다면 놀랄 법도 하다. 그것도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요우는 이 벚꽃빛 소녀 사쿠라우치 리코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의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도시에서 전학생이 온다길래 조금 신경만 쓰였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귤색 타카미 치카 덕분에 함께 스쿨 아이돌을 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코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런 요우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리코는 요우의 책상에 엎드린 채로 평온하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리, 리코쨩-?”

 “…으읏.”


 조심스레 말을 걸자 리코는 얼굴 방향을 돌렸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얼굴이 보이자 두근거림이 빨라진다.


 ‘…자는 얼굴, 귀엽네.’


 눈매가 뾰족한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무구한 아이같은 얼굴.

 이대로 웅크려 계속 바라볼까 싶었지만 그 시점에 문득 정신이 돌아온다.


 ‘…리코쨩은 왜 아직도 여깄을까?’


 왜 하필 자기 책상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치 않고 요우는 생각했다.

 버스를 놓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누굴 기다리기라도 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귤색이 머리에 번뜩였다.


 “…읏.”


 ‘그건 그렇지, 치카쨩은 리코쨩이 여기 와서 처음 생긴 친구니까 소중한 사람인 거야.’

 요우는 분하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저 조금 슬펐다.


 “…리코쨩, 일어나. 거기 내 자리야.”


 그 슬픔을 떨치려는 듯이 난폭히 리코의 어깨를 흔들었다.


 “으음….”


 리코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윽고 눈을 떠 호박색 눈이 보였다. 잠결인 채 리코는 천천히 일어났다.


 “…리, 리코쨩?”


 하지만 그런 리코의 모습에 요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우를 바라보는 호박색 눈동자는 어딘가 텅 비어 있어, 상반신마저 휘청이고 있었다.

 이제서야 리코는 눈앞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챈 양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우, 쨔…?”

 ‘…혹시 아직도 잠 안 깬 건가.’


 평소와는 다른 리코의 혀짧은 소리가 귀여웠다.


 ‘귀, 귀여워…! 그, 근데 어쩌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것 같은데, 다시 재우는 게… 낫겠지?’


 괜히 깨운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다시 입을 열려던 요우의 머리 속에 자그맣고 새까만 물방울 같은 궁금증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날 좋아하냐고 물을 수 있지 않을까?’


 방울져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은 파동을 일으켜 흩어졌다.

 아직 잠도 안 깬 리코한테 그런 질문을 할 순 없다고 머리 속 구석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허나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며 머리 속 정가운데서 외쳤다.

 이게 그 타천인가 뭔가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요우는 입을 열었다.


 “…저기, 리코쨩.”


 리코는 멍한 채 요우를 바라보며 여전히 갸웃거릴 뿐이었다.


 “요우를 좋아해?”


 최대한 부드럽게 그렇게 묻자, 리코는 조금 뜸을 들인 후 요우와 눈을 맞추고는 –여전히 멍하니 있는 채였지만-,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미소지었다.


 ‘……으읏!?’


 한 번에 얼굴로 열이 모였다. 그것이 리코의 말을 듣고 기뻐서 그런 것인지, 리코의 무방비한 미소에 심장을 직격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우는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한편, 왼손을 리코의 머리에 두었다.


 “그렇구나. 깨워서 미안해. 이제 자도 돼. 치카쨩 오면 알려 줄게.”


 그렇게 말하자 리코는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짓는 채,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읏, 하아-…!”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하자 요우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뭔데!? 뭔데!? 뭐 그렇게 무방비한 건데!? 평소같은 어른스러움은 다 어디 가고!?’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모름지기 스쿨 아이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난폭한 태세로 저 너머 의자에 걸터앉았다.


 “리코쨩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어-….”


 흘끔 리코를 바라보자, 머리 속에서 아까 일이 다시 재생되며, 귀에 “좋아해-“ 라는 단어가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요우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다다다닷 하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빠른 발걸음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샌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다다다닷.

 시계를 보자 한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다다다닷.

 리코를 바라보자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다다다닷, 소리가 점점 커진다.

 다다다다다다다닷! 

 

 “보충 수업 끝-!”

 

 미닫이문이 활짝 열리고, 리코는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읏!”


 치카는 얼굴을 가득 채우는 미소로 교실에 걸어 들어왔다.


 “치카쨩 시끄러! 리코쨩 깨 버렸잖아?”

 “아, 아냐. 좀 놀란 것 뿐이야.”


 그렇게 말하고 쓴웃음을 띄우는 리코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한 시간 전에 본 것은 꿈이 아닐까 요우는 생각했다.


 “어? 그러고 보니 리코쨩 왜 남아 있어? 버스라도 놓쳤어?”


 요우가 자신의 기억을 걱정하고 있던 와중, 치카가 리코에게 물었다.


 “아, 그거 실은….”


 리코는 치카와 요우를 번갈아가며 보더니 부끄럽다는 듯 웃음지었다.


 “세 명이서 같이 하교하고 싶어서….”


 그래서 기다렸어. 리코가 그렇게 덧붙이자 요우의 마음은 손쉽게 사로잡혀 버렸다.

 치카에게도 통했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안, 되려나?”

 “안 될리가!”

 “오히려 고맙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러고 보니, 왜 내 책상에서 자고 있었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요우는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아, 그건 말야.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뻐서.”


 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 그렇게 말하고는 리코는 또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잠결의 일을 기억하는지 물어볼까도 싶었지만, 그 기억은 요우 마음 속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ーーー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번엔 리코→치카라고 생각하는 요우→리코 이야깁니다.

리코쨩을 아끼는 일에 전력을 쏟고 싶습니다.

아 이건 뜬금없는 말입니다만 자다 일어나서 싱긋거리는 리코쨩 귀엽지 않나요?

마지막에 좀 서두른 감이 있지만 그건 모르는 체 해주세요.



번역 - 낮-꿈

Posted by 2학년조아